설교·고린도전서 12:4-11·2026년 10월 27일
은사는 다양하나 성령은 같으니 — 고린도전서 12:4-11
성령강림 후 · 고린도전서 12:4-11 ·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입니다. 고린도전서 12:4-11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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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입니다. 고린도전서 12:4-11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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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는 다양하나 성령은 같으니
제목: 은사는 다양하나 성령은 같으니 주제: 교회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한 성령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서론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의 은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뜨거운 기도의 은사를, 어떤 이는 사람을 위로하는 상담의 은사를, 또 어떤 이는 행정적이고 조직적인 봉사의 은사를 사모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남들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보며 부러워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는 이러한 은사 문제로 인해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더 뛰어난 은사를 가졌는지를 두고 우열을 가렸고, 이로 인해 공동체는 분열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12장 4절에서 11절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교회의 혼란을 향해 바울이 던지는 명쾌한 해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공동체는 세상의 기업이나 단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은 뛰어난 능력과 효율성을 가진 개인을 높이고, 그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능력이 중심이 아니라 ‘성령’이 중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은사가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신 선물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여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어떤 능력을 갖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이 누구의 통치 아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질서와 사랑이 결여된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사의 근원과 그 목적을 하나하나 짚어 나갑니다. 4절부터 11절까지 이어지는 말씀은 은사가 ‘다양성’ 속에서도 어떻게 ‘통일성’을 유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적 정점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은사의 본질을 깨달을 때, 우리 교회는 비로소 분열을 넘어 성숙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은사를 성령의 관점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본론
1대지. 은사는 다양하나 성령은 같으니
바울은 먼저 은사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4절에 따르면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성령은 같고, 5절에서는 직분은 여러 가지이나 주는 같으며, 6절에서는 사역은 여러 가지이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하는 ‘은사’라는 단어는 ‘카리스마’(χάρισμα, 카리스마,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단어는 인간이 노력하여 얻어낸 성과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맡겨진 직무이자 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회 안에는 비교와 시기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청지기의 자세를 갖게 됩니다. 바울은 은사, 직분, 사역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직분’은 봉사 혹은 섬김을 뜻하며, ‘사역’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혹은 활동을 의미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다양함의 배후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고, 주님께서 그 직분을 맡기시며,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는 교회의 모든 활동이 인간의 기획이나 전략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조화로운 역사임을 시사합니다. 한 몸 안에서 심장과 폐와 손발이 제각기 다른 역할을 하지만 결국 하나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조화가 깨질 때 교회는 생명력을 잃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은사를 주신 분이 동일한 성령이심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내 은사가 타인의 은사보다 더 가치 있다고 착각합니다. 앞자리에 서서 눈에 띄는 봉사를 하는 사람과 이름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기도하는 사람의 은사를 누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은사가 하나님의 몸을 세우기 위해 나뉘어 주어진 것이라고 명시합니다. 헬라어로 ‘나누다’ 혹은 ‘분배하다’를 뜻하는 ‘디아이레오’(διαιρέω, 디아이레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지체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부족함을 채우고 서로를 온전케 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 이유는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1]2대지. 성령의 나타나심은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 함이라
이제 바울은 은사가 주어지는 실질적인 목적을 제시합니다. 7절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나타내심’을 뜻하는 단어는 ‘파네로시스’(φανέρωσις, 파네로시스, 드러냄)입니다. 이는 은사가 은밀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밖으로 드러나야 할 실체임을 뜻합니다. 즉, 성령의 은사는 교회라는 공동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하나님의 그림입니다. 나 혼자 은사를 가지고 즐거워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은사의 목적과 거리가 멉니다. 그 은사가 공동체에 흘러 들어갈 때, 비로소 ‘유익함’이라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이 ‘유익’은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가시화하는 선한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8절부터 10절까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방언, 통역이라는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합니다. 이 목록은 당시 고린도교회에 나타났던 현상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록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한 성령’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11절에서 바울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못 박습니다.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주체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 의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의 필요에 따라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내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머무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종종 은사주의에 함몰되거나, 반대로 은사를 지나치게 억제하는 극단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적 은사의 실천은 매우 실용적이면서도 영적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누군가 지혜의 말씀을 전할 때, 누군가는 그것을 분별하고, 누군가는 그 말씀대로 실천할 믿음을 발휘합니다. 각자의 은사가 맞물려 돌아갈 때,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의 유익을 누립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의 은사를 사용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교회에 유익한가?’라는 질문입니다. 나의 재능이 공동체를 갈등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화평케 하는지를 살피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성령은 분열의 영이 아니라 화합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2] 더 나아가, 이 은사들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을 언급하며 그것이 결코 분열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습니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의 소리를, 첼로는 첼로의 울림을 낼 때 전체적인 교향곡이 완성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모든 악기가 오직 자신의 소리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다르게 나누어 주신 이유는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살아가도록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훈장이 아니라, 서로를 섬기기 위해 받은 거룩한 빚입니다. 우리가 자주 범하는 실수는 은사를 나의 정체성과 결부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병 고치는 은사가 있으니 더 영적이다"라거나 "나는 방언을 못 하니 공동체에서 낮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은 은사를 주신 분의 의도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은사의 참된 가치는 그 자체의 화려함에 있지 않고, 그것이 교회라는 몸을 세우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나의 은사가 다른 지체를 무시하게 하거나 공동체 안에서 나를 돋보이게 한다면, 우리는 즉시 멈추어 서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기에, 은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부르심만이 있을 뿐입니다.3대지.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역사
성령의 은사는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권적으로 분배하시는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은 은사 분배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선언합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여기서 '행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네르게오'(ἐνεργέω, 에네르게오, 역사하다, 활동하다)입니다. 이는 은사가 단순히 정적인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지금도 교회 안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마치 유기체의 생명력처럼 교회라는 몸 구석구석을 흐르며, 그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에너지를 공급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은사적 현상은 인간의 기교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활동 그 자체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교회의 질서가 인간의 계급이나 경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강조하듯, 은사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받은 은혜의 도구입니다. 간혹 우리는 '나는 왜 이런 은사를 주셨을까'라며 자신의 위치를 불만족스러워하거나, 반대로 '왜 저 사람에게만 저런 은사를 주셨을까'라며 시기합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성령께서는 가장 완벽한 비율로 각 지체에게 은사를 배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며, 결코 불필요한 은사를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은사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완벽한 설계도 속에 들어 있는 필수 요소입니다. [3] 그렇다면 성령께서 주시는 이 다양한 은사들을 어떻게 분별하고 적용해야 할까요? 바울은 본문에서 지혜와 지식의 말씀, 믿음, 치유, 예언, 영 분별, 방언 등 구체적인 목록을 제시합니다. 이는 당시 고린도교회가 겪었던 은사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교회 안에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컨대 '영들을 분별함'(διακρισις, 디아크리시스, 분별)이라는 은사는 단순히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흘러 들어오는 가르침과 활동이 정말 성령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가려내는 거룩한 안목입니다. 오늘날처럼 수많은 정보와 영적 메시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에게는 이 분별의 은사가 절실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열심으로만 사역할 때, 교회는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령의 활동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하고, 그분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4]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긴장을 발견합니다. 은사는 성령의 주권적 선물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에게는 성숙한 책임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거나 봉사할 때, 그것을 나의 권력이나 영광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주신 은사는 그분을 드러내기 위한 통로일 뿐입니다. 한 성도가 교회에서 봉사하며 지치는 이유는 은사를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은사는 그분께서 친히 힘을 공급하시기에, 지치지 않는 은혜가 따릅니다. 이번 주 우리가 구역 모임에서 서로의 은사를 나눌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성령께서 지금 우리 공동체에 무엇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가'를 먼저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 당신의 위대한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5]결론
고린도전서 12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은사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변화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은사를 나를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로 여기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주님의 몸을 온전케 하는 생명의 기능이라고 가르칩니다.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배후에는 동일한 성령께서 계시며, 직분은 다양하지만 동일한 주님께서 다스리시고, 사역은 다양하지만 동일한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우리는 분열을 일으키는 세상의 논리를 따라 '누가 더 나은가'를 묻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거대한 악보 위에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그 음을 정확하게 연주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과 은사는 십자가의 은혜 위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심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그 십자가의 낮아짐이 오늘날 우리를 살리는 최고의 은사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게 하십니다. 우리의 은사가 때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조각들을 모아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를 완성해 가십니다. 이번 주, 우리는 각자의 일터와 가정,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 성령께서 나누어 주신 은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매일 아침 일터로 향하는 길에서, 혹은 자녀의 문제로 근심하는 가정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그 거룩한 뜻에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이번 주 구역 모임이나 교회 봉사 현장에서, 나의 은사를 자랑하기보다 지체의 은사를 귀히 여기며 격려하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십시오. 우리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성령'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를 사용할 때마다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려는 욕망은 십자가 앞에서 죽고,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겸손한 섬김만이 우리 교회 안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은사의 근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실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가진 모든 은사가 오직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 주신 성령의 역사를 따라, 비교의 마음을 버리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게 하시며, 이 모든 은사의 끝에서 오직 주님만 높임 받으시길 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오늘 하루도 성령의 통치 아래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 설교는 SermonSage에서 작성되었습니다. 같은 본문으로 나의 회중에 맞는 설교를 만들어보세요 → sermonsage.net
참고문헌
본 설교가 근거로 삼은 주석입니다. 본문의 [번호]가 아래 항목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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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chapter the apostle, I. Considers the case of spiritual gifts, which were very plentifully poured out on the Corinthian church. He considers their original, that they are from God; their variety and use, that they were all intended for one and the same general end, the advancement of Christianity and the church’s edification (v. 1–11). II. He illustrates this by an allusion to a human body, in which all the members have a mutual relation and subserviency, and each has its proper place and use (v. 12–26). III. He tells us that the church is the body of Christ, and the members are variously gifted for the benefit of the whole body, and each particular member (v. 27–30). And them, IV. Closes with an exhortation to seek somewhat more beneficial than these gifts (v. 31). Verses 1-11 The apostle comes now to treat of spiritual gifts, which abounded in the church of Corinth, but were greatly abused. What these gifts were is at large told us in the body of the chapter; namely, extraordinary offices and powers, bestowed on ministers and Christians in the first ages, for conviction of unbelievers, and propagation of the gospel. Gifts and graces, charismata and charis, greatly differ.
Matthew Henry's Commentary · 매튜 헨리 †1714 · 고린도전서 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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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is given to every man He now points out the purpose for which God has appointed his gifts, for he does not confer them upon us in vain, nor does he intend that they shall serve the purpose of ostentation. Hence we must inquire as to the purpose for which they are conferred. As to this Paul answers -- (with a view to utility) -- pros to sumpheron; that is, that the Church may receive advantage thereby.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may be taken in a passive as well as in an active sense -- in a passive sense, because wherever there is prophecy, or knowledge, or any other gift, the Spirit of God does there manifest himself -- in an active sense, because the Spirit of God, when he enriches us with any gift, unlocks his treasures, for the purpose of manifesting to us those things that would otherwise have been concealed and shut up. The second interpretation suits better. The view taken by Chrysostom is rather harsh and forced -- that this term is used, because unbelievers do not recognize God, except by visible miracles. Footnotes:
Calvin's Commentary · 장 칼뱅 †1564 · 고린도전서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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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 11. - One and the selfsame Spirit. The unity of the source from which all the charisms flowed ought to have excluded the possibility of a boastful comparison of gifts, arid all depreciation of those gifts which, because they were less dazzling, were deemed inferior. St. Paul afterwards shows that the less dazzling might be infinitely the more valuable for purposes of spiritual edification. Verses 12-31. - The Church compared to a body and its members. Verse 12. - As the body is one, and hath many members. To this favourite image St. Paul reverts several times (Romans 12:4, 5; Ephesians 4:11-16; Colossians 2:19). It is probable that he was familiar with the image from the fable of Menenius Agrippa, who had used it as a plea for civil unity (Liv., 2:32). So also is Christ. Christ and the Church form one body, of which Christ is the Head; one Vine, of which Christians are the branches (John 15.); one building, of which Christians are the living stones. Verses 1-11. - On spiritual gifts in general. Verse 1. - Now concerning spiritual gifts; rather, things spiritual. The context, however, shows that St. Paul is thinking almost exclusively of the gifts (charismata) of the Spirit. I
The Pulpit Commentary · 스펜스·엑셀 †1917 · 고린도전서 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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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inthians 12:8-10 exhibit by way of example (γάρ) nine chief manifestations in which the Holy Spirit was displayed: word of wisdom, word of knowledge, faith, healings, powers, prophecy, discernings of spirits, kinds of tongues, interpreting of tongues. The fourth and fifth are specially marked as χαρίσματα and ἐνεργήματα respectively; the first is said to be given “through,” the second “according to,” the third and fourth “in the same” (or “the one) Spirit,” whose operation in the whole is collectively reaffirmed in 1 Corinthians 12:12. In distinguishing the recipients, P. begins with the colourless ᾧ μέν (for the rel pr in this use, cf. 1 Corinthians 11:21); but in continuation ἄλλῳ δέ (to another) is varied with ἑτέρῳ (to some one else); the latter seems to mark a more specific, qualitative difference: cf. the interchange in 1 Corinthians 15:39 ff., also in 2 Corinthians 11:4, and ἕτερος in 1 Corinthians 14:21, Romans 7:23; ἕτερος moreover dispenses with the contrastive δέ, as conveying its own antithesis (Hn however, against Mr , takes the prons. to be used indifferently). Accordingly, the third (faith) and eighth (tongues) in the chain of gifts indicate points of transition
Expositor's Greek Testament · 윌리엄 로버트슨 니콜 †1923 · 고린도전서 1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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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id all this diversity, however, what unity of the operative principle! ἐνεργεῖ] namely, as the divine power endowing the different individuals differently. See what follows. Διάφοροι μὲν οἱ κρουνοὶ, μία δὲ πάντως πηγή, Theodoret. ἰδίᾳ] seorsim, severally. See Bernhardy, p. 185. Comp Plato, Menex. p. 249 B: ἅπερ ἰδίᾳ ἑκάστῳ ἴδια γίγνεται. Pind. Nem. iii. 42; and very often in classical writers. Elsewhere in the N. T.: κατʼ ἰδίαν. καθὼς βούλεται] not: arbitrarily, but (comp on Matthew 1:19): in accordance with the determination of His will, which by no means precludes this divine self-determining action of the Holy Spirit from proceeding in a manner corresponding to the natural and general Christian capacity, and to the peculiar disposition and tendency of the minds, of men. Hence, on the one hand, the possibility that, from the human side, particular charismata may be obtained by effort, 1 Corinthians 12:31; 1 Corinthians 14:1; and also, on the other hand, the duty of not estimating slightly the gifts of others. Observe, further, in καθὼς βούλεται, the personality of the Spirit.
Meyer's NT Commentary · 하인리히 마이어 †1873 · 고린도전서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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