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15:1-8·2026년 10월 13일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요한복음 15:1-8

성령강림 후 · 요한복음 15:1-8 ·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입니다. 요한복음 15:1-8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이 설교의 근거 — 문단 24개 중 9개에 근거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 주석 인용 4건 · 성경 구절 3회 · 원어 단어 6개

요한복음 15:1-8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입니다. 요한복음 15:1-8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 본 설교는 91만 청크 신학 자료에 근거해 작성되었고, 표절·이단 패턴 검증을 통과했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제목: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주제: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음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신앙의 본질

서론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이 찬송의 가사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생명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 삶을 돌아보며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내 삶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평화와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일까?' 분주한 일상과 반복되는 고민 속에서 우리는 종종 영적인 갈증을 느낍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는 마치 뿌리 뽑힌 나무처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한복음 15장은 바로 이 갈증을 겪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후, 십자가의 길을 앞두고 가장 깊은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의 좁은 다락방이었지만, 주님은 그 공간을 온 우주적인 생명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세상의 압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를 심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열매를 맺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친히 '참포도나무'로 오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비유를 넘어, 이제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분을 통해서만 공급된다는 선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내 힘과 의지로 살아가려 했던 모든 노력을 내려놓고,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깊이 뿌리 내리는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본론

1대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의 손길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참된' 혹은 '참된 본질'을 의미하는 헬라어 「참된(ἀληθινός, 알레티노스, 참된)」이라는 단어는, 이 비유가 단순한 자연적 포도나무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본질적인 생명임을 드러냅니다. 세상의 모든 나무는 결국 시들고 말라버리지만, 주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포도나무를 돌보시며, 가지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십니다. 농부의 관심은 오직 하나, 가지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인가에 있습니다. 성도들은 흔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멀리 계신 심판자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본문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마치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처럼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입니다. 농부가 가지를 돌보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열매 맺는 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끗하게 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가지치기하다(καθαίρω, 카타이로, 가지치기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불필요한 곁가지를 잘라내어 생명력이 오직 열매를 향해 집중되도록 돕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시련과 고난, 혹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거절의 시간은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더 온전히 붙어있게 하려는 아버지의 세심한 가지치기입니다. 성도들은 이 과정에서 자주 낙심합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어려움이 닥치는가?"라고 항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의 칼날은 가지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히브리서 12:10). 따라서 우리 삶의 고난은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우리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더욱 밀착되도록 만드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풍요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하나 된 생명의 관계를 약속하셨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의 묵은 가지를 쳐내시며, 우리가 주님만을 향한 생명력을 품도록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1] 그렇다면 농부의 이 가지치기는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어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성도들은 흔히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업무와 회식, 자녀의 학업 문제와 노후에 대한 불안은 우리를 끊임없이 세상의 염려로 이끕니다. 이러한 염려는 마치 포도나무의 영양분을 앗아가는 잡초와 같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소음에 매몰되지 않도록 때로는 멈춤을 허락하십니다. 계획했던 일이 무산되거나, 간절히 구하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치기의 칼날을 드시는 때입니다. 이는 결코 우리를 해치려는 보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맺어야 할 영적인 열매를 가로막는 무거운 짐들을 잘라내어,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수가 우리 심령에 막힘없이 흐르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깊은 배려입니다. 성도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취를 의지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열매를 맺듯이, 우리 신앙의 성숙은 내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주님께 붙어 있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2]

2대지. 깨끗하게 된 가지로서 누리는 말씀의 정결함과 생명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깨끗한'이라는 말은 앞서 농부가 가지치기할 때 사용된 단어와 어원적으로 연결된 「깨끗한(καθαρός, 카타로스, 깨끗한)」입니다. 가지치기를 마친 가지는 이제 농부의 손길을 거쳐 주님의 말씀으로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단순히 열매를 맺어내려는 성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생명을 확인하고, 그 생명이 밖으로 흘러나가도록 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단순한 지식의 체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뚫고 들어와 불필요한 욕망과 세상의 잡음을 쳐내는 살아있는 검입니다. 제자들이 깨끗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도덕적 수양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족하고 연약했으나,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과 동행하며 선포하신 말씀이 그들의 내면을 씻어내고 계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서, 혹은 골방에서 성경을 펼칠 때, 그 말씀은 우리의 교만을 쳐내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잘라내며 우리를 주님의 생명에 합당한 상태로 빚어갑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할수록, 우리는 주님이라는 참포도나무의 생명력을 더 깊이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는 데 힘을 쏟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내 안에 머물라." 여기서 '머무르다'는 헬라어로 「머무르다(μένω, 메노, 머무르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단순히 잠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집을 짓고 거주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주할 때, 우리 삶에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생명이 배어납니다. 이것은 억지로 맺는 열매가 아니라, 포도나무의 수액이 가지로 흘러가 자연스럽게 맺히는 생명의 결과물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삶에서 말씀을 통해 쳐내야 할 가지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내면에 거주하도록,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그분의 음성을 듣는 정결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시고, 가장 선한 열매를 맺을 준비를 이미 마치셨습니다. [2] 우리가 이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말씀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참된 포도나무이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깨끗함의 근거가 제자들의 어떠함이 아니라, 그들이 들은 '말씀'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복잡한 논리와 무한 경쟁의 가치관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갈 때, 우리를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거룩한 형상을 회복하게 합니다. 성도들은 흔히 신앙생활을 '무엇을 더해야 하는 과정'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더 많은 봉사, 더 뜨거운 열심, 더 큰 성취가 있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하라"고 하시지 않고, "내 안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은 우리가 스스로를 깎아 만드는 조각품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흐르도록 우리를 비워내는 작업입니다.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세상의 욕심,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느끼는 열등감,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불필요한 가지들을 주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으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의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올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치유와 정결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3대지. 내 안에 머무는 자가 누리는 응답과 열매의 풍성함

예수님께서는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구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욕망을 채우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는 신뢰의 표현인 「요청하다(αἰτέω, 아이테오, 요청하다)」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깊이 뿌리 내리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존재의 핵심에 자리 잡을 때, 우리의 기도는 더 이상 이기적인 소원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력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하는 거룩한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 이루어지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주님의 뜻과 하나 되어 그분의 지혜를 구하기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외면하실 수 없다는 확신을 줍니다. 이러한 기도의 능력은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음으로 얻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의 수액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듯이, 우리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얼마나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분의 뜻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은 채 내 욕심만을 구한다면, 그것은 주님과 상관없는 가지의 헛된 몸짓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우리의 의지가 주님의 의지에 굴복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향한 확실한 기차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자녀가 맺는 열매를 기뻐하시며, 우리가 그 열매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도전을 마주합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말씀이 정말 내 마음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신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원하는 대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여 우리의 소원이 주님의 소원과 일치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고민, 예를 들어 자녀의 앞날이나 경제적인 불안, 혹은 관계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불안을 다스리고, 주님의 평안으로 우리의 기도를 채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선한 응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복적 성취가 아니라, 내 삶의 주권이 나에게서 주님께로 옮겨지는 영적 대전환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 안의 묵은 가지를 쳐내십니다. 우리의 왜곡된 욕망을 말씀으로 씻어내고, 오직 생명의 열매만을 맺도록 다듬으십니다. 그래서 응답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분의 사랑에 더 깊이 잠기는 과정 그 자체가 됩니다. 주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의 자연스러운 생명력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가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반드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매로 귀결됩니다. [3] 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결론지으십니다. 여기서 '많이 맺는' 것은 「많은(πολύς, 폴뤼스, 많은)」이라는 단어로, 주님의 생명력이 우리를 통해 얼마나 풍성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주님의 생명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를 묻지만, 주님은 '얼마나 주님의 생명에 붙어 있느냐'를 물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그분의 성품을 나타낼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 된 자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다. 성도들은 흔히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더 많은 전도, 더 많은 봉사,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받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내 안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열매는 맺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저절로 맺히는 생명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책임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며, 우리 내면의 불필요한 가지들을 말씀의 검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는 것입니다. 주님은 농부이신 아버지의 손길을 통해 우리를 다듬으시고, 우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복되고 안전한 신앙의 길입니다. [4]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돌보시는 농부 하나님의 관계를 묵상했습니다. 세상의 분주함과 불안 속에서 우리는 종종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내 힘으로 열매를 맺으려다 시들어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내 안에 머물라"고 부르십니다. 그 머무름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분께 매달리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수액을 만들어낼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주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펼치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불안을 쳐내고, 세상의 욕심을 잘라내며, 오직 주님께로 향하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도록 하십시오. 구역이나 속회 모임에서 나누는 교제와 기도가 단순히 안부를 묻는 수준을 넘어, 서로가 주님께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제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맺는 열매는 우리가 잘나서 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가지를 꺾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덕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이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꺾인 가지가 아니라, 그분의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난 접붙임 받은 가지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아버지의 손길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 은혜의 뿌리에 깊이 내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우리를 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우리 삶의 가지를 치시는 농부 하나님의 손길이 아프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이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까이 붙어 있게 하려는 사랑임을 고백합니다. 내 힘과 의지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오직 말씀의 정결함 안에 머물러 주님께서 맺게 하시는 생명의 열매를 맺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설교는 SermonSage에서 작성되었습니다. 같은 본문으로 나의 회중에 맞는 설교를 만들어보세요 → sermonsage.net


참고문헌

본 설교가 근거로 삼은 주석입니다. 본문의 [번호]가 아래 항목을 가리킵니다.

  • [1] 매튜 헨리 주석 / Matthew Henry's Commentary — 요한복음 15:1-8
    원문 보기 · 퍼블릭 도메인
    It is generally agreed that Christ’s discourse in this and the next chapter was at the close of the last supper, the night in which he was betrayed, and it is a continued discourse, not interrupted as that in the foregoing chapter was; and what he chooses to discourse of is very pertinent to the present sad occasion of a farewell sermon. Now that he was about to leave them, I. They would be tempted to leave him, and return to Moses again; and therefore he tells them how necessary it was that they should by faith adhere to him and abide in him. II. They would be tempted to grow strange one to another; and therefore he presses it upon them to love one another, and to keep up that communion when he was gone which had hitherto been their comfort. III. They would be tempted to shrink from their apostleship when they met with hardships; and therefore he prepared them to bear the shock of the world’s ill will. There are four words to which his discourse in this chapter may be reduced; 1. Fruit (v. 1-8). 2. Love (v. 9–17). 3. Hatred (v. 18–25). The Comforter (v. 26, 27). Verses 1-8 Here Christ discourses concerning the fruit, the fruits of the Spirit, which his disciples were to bring fort
    Matthew Henry's Commentary · 매튜 헨리 †1714 · 요한복음 15:1–8
  • [2] 찰스 스펄전 설교집 / Charles Spurgeon's Sermons — 요한복음 15:1-8
  • [3] 벵겔의 그노몬 주석 / Bengel's Gnomon — 요한복음 15:7
    원문 보기 · 퍼블릭 도메인
    . Τὰ ῥήματά μου) My words, which impart cleanness; “and if I Myself abide in you” [comp. John 15:4]. The correlatives are, the words of Jesus which are obeyed, and the prayers of the believing which are hearkened to.—αἰτήσεσθε) ye shall ask: ye shall be able and also shall have the will to ask. Prayer itself is a fruit, and increases our fruit. . Ἐδοξάσθη, has been (is) glorified) and hath appointed that He should be glorified.—ἵνα, that) This depends on τούτῳ, in this.—πολὺν, much) The multitude of the grapes reflects honour on the vine-dresser.—γενήσεσθε) Others have written it γενήσησθε or γένησθε, on account of the ἵνα. The Vulgate has efficiamini. What the Latin translator (Jerome) read in the Greek, is not quite clear. The same decision may be come to as regards the other versions. The construction would not be amiss, ἽΝΑ ΦΈΡΗΤΕ ΚΑῚ ΓΕΝΉΣΕΣΘΕ: comp. the note on Mark 3:27. But we rather thus explain the construction, In this (namely, that ye bear much fruit), both My FATHER is glorified, and I shall have disciples who reflect honour on Me.—ἐμοὶ) to or for Me (comp. Matthew 27:57, Joseph, who also himself ἐμαθήτευσεν τῷ Ἰησοῦ, was a disciple for Jesus, not merely of Jesus, but
    Bengel's Gnomon ·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 †1752 · 요한복음 15:7–8
  • [4] 매튜 풀 주석 / Matthew Poole's Commentary — 요한복음 15:8
    원문 보기 · 퍼블릭 도메인
    Here are two arguments to press his disciples’ abiding in him, that so they might bring forth much fruit. Herein (saith our Saviour) is my Father glorified. The glorifying of God is the great end of our lives, 1 Corinthians 10:31. God is glorified by men and women’s bringing forth much fruit, Matthew 5:16, the fruit unto holiness, Romans 6:22: fruit is the product of the plant, from the natural moisture that is in it, nourished and augmented by the fatness of the earth in which it stands, and by the warmth of the sun drawn out to the producing of such effects, according to the nature of the plant. According to the different nature of plants they bring forth various fruits, Matthew 7:16-18. Hence we read of the fruit of sin unto death,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unto life. The first is every man’s natural fruit, until he be ingrafted into Christ: being ingrafted into him, the soul having a new nature given to it, being regenerated and renewed by the Holy Ghost, it no longer bringeth forth fruit from its old principle, and according to its old nature, but from its new principle, and according to its new nature. As the cultivated earth, that is ploughed and harrowed, doth not brin
    Matthew Poole's Commentary · 매튜 풀 †1679 · 요한복음 15:8
  • 태그성령강림 후
    ✨ SERMON SAGE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십니까?

    지금 겪고 계신 일을 적으시면, 성경으로 답해 드립니다 — 가입 없이 한 번.

    강단에 그대로 올라가는 깊이.

    17,000권 국내외 신학 학술 자료를 정독한 깊이를 5분에.

    무료로 5편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