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15:1-8·2026년 10월 20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 요한복음 15:1-8
종교개혁주일 · 요한복음 15:1-8 · 이번 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요한복음 15:1-8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이 설교의 근거 — 문단 28개 중 9개에 근거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 주석 인용 4건 · 성경 구절 3회 · 원어 단어 5개
이번 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요한복음 15:1-8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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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제목: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주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 된 성도는 그분 안에 거함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서론
우리는 때로 자신의 노력으로 인생의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며, 끊임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의미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포도나무이신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후,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문에는 금으로 만든 거대한 포도나무 장식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익숙한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선언하심으로써, 기존의 제도나 혈통, 종교적 업적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만이 참된 생명을 가능하게 함을 밝히셨습니다. 우리 삶에 쉼 없이 밀려오는 불안과 공허함은 어쩌면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느끼는 목마름과도 같습니다. 가지는 스스로 물을 길어 올릴 수 없으며, 열매를 맺으려 애쓴다고 해서 맺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수액이 공급되고, 그 생명력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생명이 어떻게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 생명 안에 머물 수 있는지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본론
1대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농부이신 아버지의 돌보심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참된'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참된(ἀληθινός, 알레티노스, 참된)」은 단순히 거짓이 아니라는 뜻을 넘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실체를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였으나, 종종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변질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 생명의 완성을 직접 성취하시는 유일하고도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농부로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안전장치입니다. 농부는 나무를 심고 가꾸며, 가지가 제대로 자라도록 살피는 존재입니다. 2절에서 주님은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깨끗하게 하다'라는 뜻의 「가지치기하다(καθαίρω, 카타이로, 들어 올리다)」는 농부가 포도나무의 불필요한 곁가지를 잘라내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는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불필요한 욕망과 세상의 잡념을 잘라내시는 아버지의 세심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때로 삶에 찾아오는 고난과 상실을 농부의 칼날로 오해하곤 합니다. 직장에서의 실패, 관계의 단절, 혹은 뜻대로 되지 않는 건강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농부이신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미워해서 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님께 더욱 온전히 붙어 있게 하려고, 우리 안의 헛된 자아를 쳐내시는 것입니다. 고통의 순간은 우리가 스스로 나무가 되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고, 다시 참 포도나무의 생명력에만 의존하게 만드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우리는 그분의 돌보심 속에서 결코 버림받지 않으며, 오히려 더 큰 열매를 향해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1] 이처럼 하나님께서 농부로서 행하시는 가지치기는 우리 인생에 닥치는 시련을 단순히 고통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흔히 가지가 잘려 나가는 아픔을 보며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거나, 혹은 나의 신앙에 문제가 생겼다고 속단하곤 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농부의 손길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아예 제거하는 심판과, 열매 맺는 가지를 깨끗하게 다듬는 연단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생명의 통로를 정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일상의 분주함과 예기치 못한 막힘은 어쩌면 주님께로부터 오는 생명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곁가지들일지도 모릅니다. 자녀의 학업 문제로 밤잠을 설치거나,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때문에 속을 앓고,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평안을 잃어버린 우리 마음의 상태를 돌아보십시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잡념과 헛된 야망이 우리의 가지를 무겁게 짓누를 때, 그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시려고 때로는 고통이라는 칼날을 사용하여 우리를 정결케 하십니다. 이러한 돌보심은 결코 우리를 소멸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존재 자체가 주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려는 아버지의 간절한 의지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포도나무의 진액을 공급받아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우리 신앙의 본질 또한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려는 강박을 버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방식대로 화려한 잎사귀만 무성하게 만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주님께 붙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참된 평안과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맺히기를 기다리십니다.2대지. 말씀 안에 머무는 삶 — 풍성한 열매의 비결
주님께서는 3절에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말씀'은 「말씀(λόγος, 로고스,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선포하신 복음과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깨끗해진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심겨 그들을 정결케 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4절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핵심 원리를 제시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거하다'라는 헬라어 「머무르다(μένω, 메노, 머무르다)」는 단순히 잠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상태를 뜻합니다. 가지가 나무와 하나 되어 떨어질 수 없는 연합의 상태가 바로 '거함'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의지나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내 사고의 중심이 되고, 주님의 뜻이 내 발걸음의 지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로부터 수액을 공급받듯, 우리는 기도의 자리와 말씀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주님의 생명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가 신앙생활을 '열매 맺기 위한 노력'으로 오해합니다. 마치 내가 힘써서 좋은 가지가 되어야 열매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열매는 맺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주님께서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억지로 열매를 맺으려고 끙끙거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나무를 병들게 하는 일입니다. 가지의 유일한 책임은 오직 나무에 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맺어야 할 인내, 사랑, 온유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은 나의 인격적인 결단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나오는 결과입니다. 우리의 삶이 메마르고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무 바빠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거나, 내 생각의 가지를 주님보다 더 크게 키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삶의 모든 분주한 곁가지를 내려놓고 오직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깊이 접붙임 되기를 원합니다. 내 안의 욕심이 잘려나가는 아픔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 주님의 생명이 흐르게 할 때 우리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가 실제로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단순히 성경 지식을 습득하거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원하는 것'은 나의 이기적인 소망이 아니라, 주님과 깊은 연합을 이룬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 때, 그 말씀은 우리의 메마른 감정을 적시고 딱딱하게 굳은 의지를 부드럽게 합니다. 마치 농부가 가지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는 것처럼, 말씀은 우리 안의 교만과 세속적인 가치관을 분별하게 하여 우리를 더욱 순결한 가지로 빚어갑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큰 문제 앞에서만 주님을 찾고, 일상의 평범한 시간 속에서는 말씀의 공급 없이 스스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로부터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즉시 생명력을 잃고 시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의 수액이 공급되지 않는 순간 영적인 고갈을 경험합니다.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가정에서의 갈등,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생명줄은 바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생각의 깊은 곳에 머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며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신앙을 갖게 됩니다.3대지. 말씀의 기도로 누리는 응답과 영광의 삶
이제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며 말씀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자가 누릴 열매의 실체를 7절과 8절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여기서 주님은 기도의 응답과 제자 됨의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이 기도가 단순히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구하다'라는 단어는 「요청하다(αἰτέω, 아이테오, 구하다)」라는 헬라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단순히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이 내 삶에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깊이 거할 때, 우리의 기도는 본질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내 욕망이 말씀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질 때, 그 욕망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강렬한 태양 빛 아래서 얼음이 녹아내리듯, 말씀의 빛 아래서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 제목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로 변모합니다. 따라서 기도의 응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성과가 아니라,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되었을 때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성취되는 생명의 결과입니다. [3] 이러한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신앙을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합니다. 8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존재 목적은 스스로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열매를 맺어 농부의 수고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맺는 인내, 정직, 용서, 사랑의 열매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라는 존재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가 풍성할수록, 사람들은 그 열매의 근원인 하나님 아버지를 주목하게 되며, 이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제자의 삶입니다. 어떤 이들은 묻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왜 내 삶에는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우리는 정직하게 우리 자신의 상태를 진단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보다 세상의 성취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기보다는, 내 필요에 맞춘 말씀의 파편만을 취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열매는 맺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충만할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맺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통로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기도할 때조차 여전히 내 뜻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참된 제자는 주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게 내어드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내 기도의 언어가 바뀝니다. "내 뜻대로 하옵소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바로 그 지점이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통로가 됩니다. [4]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어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정체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은퇴를 앞두고 있었고, 자녀들은 독립하여 곁을 떠났으며, 경제적인 여유마저 예전 같지 않아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성경을 펼쳤지만, 글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은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15장 7절의 말씀을 읽으며 멈춰 섰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는 그동안 말씀을 공부의 대상으로만 여겼지, 자신의 삶에 거하게 하지는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처지를 주님께 온전히 맡기기로 결단했습니다. 자신의 계획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도 말씀이 주는 위로를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삶에 맺히기 시작한 것은 세상적인 성과가 아니라, 이웃을 향한 따뜻한 격려와 고난을 견디는 깊은 인내, 그리고 감사를 잃지 않는 평안의 열매였습니다. 그의 변화된 삶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그가 믿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열매 맺는 제자의 영광입니다. 이번 주, 우리는 구역과 속회 모임에서 이 말씀을 나누며 한 가지 결단을 실천해 봅시다.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난 뒤, 그 말씀 한 구절을 종이에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하루를 보내는 동안 그 말씀이 내 삶의 어떤 상황에서 적용되어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십시오. 직장에서 동료의 비판을 들을 때, 가정에서 가족과 갈등을 겪을 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어떻게 나의 언어와 태도를 다스리는지 관찰해 보십시오. 그렇게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우리의 기도는 더 이상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명력이 될 것입니다.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주님과 우리의 연합이 얼마나 절대적인 생명의 관계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가지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듯, 우리 역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를 심으시고 가꾸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오늘도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세심한 손길로 다듬고 계십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우리의 업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 붙어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산물입니다. 우리가 인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생명을 공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이 비록 메마른 가지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농부이신 아버지의 손길이 지금도 당신의 삶을 가지치기하며 더 깊은 연합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할 일은 오직 하나, 주님이라는 나무에 온전히 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행위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접붙임 받은 새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다 쏟으셨기에, 이제 우리는 그 생명을 공급받아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라 부르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길 원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가득 채우게 하십시오. 분주함 속에서도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십시오. 그때 우리 삶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과 기쁨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여러분은 세상 속에서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의 가지에 생명의 진액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그 생명력을 의지하여 오늘을 담대히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구원이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믿고, 오늘도 그분의 품 안에 머무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우리를 참 포도나무이신 당신의 가지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스스로 열매 맺으려 애쓰던 헛된 노력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 안에 거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우리 삶을 가지치기하실 때, 그 아픔조차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생명으로만 충만케 하옵소서. 우리 삶에 맺히는 모든 열매가 오직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게 하시며, 오늘도 말씀 안에 거함으로 기도의 응답과 제자의 영광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생명으로 살리신 참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 설교는 SermonSage에서 작성되었습니다. 같은 본문으로 나의 회중에 맞는 설교를 만들어보세요 → sermonsage.net
참고문헌
본 설교가 근거로 삼은 주석입니다. 본문의 [번호]가 아래 항목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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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generally agreed that Christ’s discourse in this and the next chapter was at the close of the last supper, the night in which he was betrayed, and it is a continued discourse, not interrupted as that in the foregoing chapter was; and what he chooses to discourse of is very pertinent to the present sad occasion of a farewell sermon. Now that he was about to leave them, I. They would be tempted to leave him, and return to Moses again; and therefore he tells them how necessary it was that they should by faith adhere to him and abide in him. II. They would be tempted to grow strange one to another; and therefore he presses it upon them to love one another, and to keep up that communion when he was gone which had hitherto been their comfort. III. They would be tempted to shrink from their apostleship when they met with hardships; and therefore he prepared them to bear the shock of the world’s ill will. There are four words to which his discourse in this chapter may be reduced; 1. Fruit (v. 1-8). 2. Love (v. 9–17). 3. Hatred (v. 18–25). The Comforter (v. 26, 27). Verses 1-8 Here Christ discourses concerning the fruit, the fruits of the Spirit, which his disciples were to bring fort
Matthew Henry's Commentary · 매튜 헨리 †1714 · 요한복음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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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already clean, on account of the word. He reminds them that they have already experienced in themselves what he had said; that they have been planted in him, and have also been cleansed or pruned He points out the means of pruning, namely, doctrine; and there can be no doubt that he speaks of outward preaching, for he expressly mentions the word, which they had heard from his mouth. Not that the word proceeding from the mouth of a man has so great efficacy, but, so far as Christ works in the heart by the Spirit, the word itself is the instrument of cleansing Yet Christ does not mean that the apostles are pure from all sin, but he holds out to them their experience, that they may learn from it that the continuance of grace is absolutely necessary. Besides, he commends to them the doctrine of the gospel from the fruit which it produces, that they may be more powerfully excited to meditate on it continually, since it resembles the vine-dresser's knife to take away what is useless.
Calvin's Commentary · 장 칼뱅 †1564 · 요한복음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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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Τὰ ῥήματά μου) My words, which impart cleanness; “and if I Myself abide in you” [comp. John 15:4]. The correlatives are, the words of Jesus which are obeyed, and the prayers of the believing which are hearkened to.—αἰτήσεσθε) ye shall ask: ye shall be able and also shall have the will to ask. Prayer itself is a fruit, and increases our fruit. . Ἐδοξάσθη, has been (is) glorified) and hath appointed that He should be glorified.—ἵνα, that) This depends on τούτῳ, in this.—πολὺν, much) The multitude of the grapes reflects honour on the vine-dresser.—γενήσεσθε) Others have written it γενήσησθε or γένησθε, on account of the ἵνα. The Vulgate has efficiamini. What the Latin translator (Jerome) read in the Greek, is not quite clear. The same decision may be come to as regards the other versions. The construction would not be amiss, ἽΝΑ ΦΈΡΗΤΕ ΚΑῚ ΓΕΝΉΣΕΣΘΕ: comp. the note on Mark 3:27. But we rather thus explain the construction, In this (namely, that ye bear much fruit), both My FATHER is glorified, and I shall have disciples who reflect honour on Me.—ἐμοὶ) to or for Me (comp. Matthew 27:57, Joseph, who also himself ἐμαθήτευσεν τῷ Ἰησοῦ, was a disciple for Jesus, not merely of Jesus, but
Bengel's Gnomon ·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 †1752 · 요한복음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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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So shall ye be my disciples - Worthy of the name. To be a disciple of Christ is both the foundation and height of Christianity. 15:9 Abide ye in my love - Keep your place in my affection. See that ye do not forfeit that invaluable blessing. How needless a caution, if it were impossible for them not to abide therein? 15:10 If ye keep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 On these terms, and no other, ye shall remain the objects of my special affection. 15:11 That my joy might remain in you - The same joy which I feel in loving the Father, and keeping his commandments. 15:12 Your joy will be full, if ye so love one another.
Wesley's Explanatory Notes · 존 웨슬리 †1791 · 요한복음 1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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