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로마서 12:1-2·2026년 11월 3일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 로마서 12:1-2

성령강림 후 · 로마서 12:1-2 ·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입니다. 로마서 12:1-2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이 설교의 근거 — 문단 26개 중 8개에 근거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 주석 인용 5건 · 성경 구절 2회 · 원어 단어 8개

로마서 12:1-2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입니다. 로마서 12:1-2 본문으로 강단에 서시는 분들을 위해, 본문 선택부터 완성까지 SermonSage에서 작성한 설교 한 편을 그대로 싣습니다. 강단에서 쓰시기 전, 한 사람의 회중으로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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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제목: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주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반응하여 자신의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변화된 삶을 사는 것

서론

로마 제국 치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은 곧 전장이었습니다. 1세기 로마의 거리는 화려한 신전들과 황제 숭배의 구호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서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이들은 세상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제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성전 제단 위에 피 흘리는 짐승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전혀 다른 제사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피 흘려 죽는 짐승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우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를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모여 드리는 의식으로 제한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예배의 지평은 훨씬 더 넓고 깊습니다. 예배는 성전의 울타리를 넘어, 여러분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의 사무실,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 그리고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의 현장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오늘 바울의 이 권면은 로마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늘도 세상의 거센 풍조 속에서 믿음을 지키려 애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박하고도 따뜻한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거스르며 거룩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그 해답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라는 토대 위에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예배가 될 수 있는지 함께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1대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근거로 드리는 삶의 예배

바울은 12장 1절을 시작하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합니다. 이는 로마서 앞선 11장까지 전개된 복음의 위대한 교리, 즉 죄 아래 있던 인간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여기서 '권면하다(παρακαλέω, 파라칼레오, 간곡히 권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사도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바로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죽은 짐승을 제단에 올리는 것이었으나, 신약 시대의 예배는 살아있는 제물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몸'은 단순히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감정, 관계,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일상의 영역을 포괄하는 전인적인 헌신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조종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의지를 드려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성경은 '영적인 예배(λογικός, 로기코스, 이성적인 예배)'라고 부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영적인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달은 자가 마땅히 드려야 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반응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를 넘어, 우리 존재의 목적을 찾아가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고귀한 응답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1]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예배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업무 성과에 매몰되어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거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제단에서 내려오고 맙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성실하게 감당하는 그 일, 가족을 위해 인내하는 그 시간, 정직하게 선택하는 그 모든 결단이 하나님 앞에서는 소중한 예배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성전의 예식보다,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맺는 작은 순종의 열매들을 더 크게 기뻐하십니다. 어느 시대나 신앙은 세상의 가치와 충돌했습니다. 1세기 로마의 성도들이 황제 숭배라는 거대한 우상 앞에서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렸듯이, 오늘 우리도 성공과 물질이라는 우상 앞에서 우리의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주일이 일요일의 예배 시간으로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모든 삶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제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가장 큰 특권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제사가 하나님께 상향식으로 전달되는 것은 우리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먼저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의 헌신은 율법적인 짐이 아니라 감격적인 반응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억지로 드리는 종교적 행위를 보며 만족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삶의 중심에 그분의 통치권이 회복되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매 순간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제사장'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께 제시하는 것(παρίστημι, 파리스테미, 곁에 서다), 즉 우리 존재 전체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정렬시키는 것이 바로 예배의 본질입니다. [2]

2대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마음의 새롭게 함

2절에서 바울은 더욱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제시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본받다(συσχηματίζω, 쉬스케마티조, 형태를 같이 하다)'라는 단어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억지로 틀에 맞춰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신의 방식대로 빚어내려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 행복의 방식, 인간관계의 요령을 따르라고 우리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형체에 갇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본받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ἀνακαίνωσις, 아나카이노시스, 갱신)' 합니다. 이는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의 내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어내는 과정입니다. '마음(νοῦς, 누스, 지성·사고력)'은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고 가치를 결정하는 사고의 중심지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갱신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변화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가', '무엇이 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가'를 묻지만, 하나님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묻게 하십니다. 이 분별력은 단순히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통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영원한 가치를 선택하며, 세상이 비웃는 길이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면 기꺼이 발을 내딛습니다. [3]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가치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미디어와 정보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은 우리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마음의 갱신'이 필수적입니다. 새벽마다 말씀을 펴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덧씌우려는 거짓된 틀을 벗겨내고 하나님의 진리라는 옷을 입는 과정입니다. 비록 세상은 우리를 향해 뒤처진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뜻을 분별하며 걷는 그 걸음은 가장 정교하고도 올바른 길입니다. 세상의 흐름은 거대해 보이고 우리는 너무나 연약해 보입니다. 직장에서의 정직함이 손해로 이어질 때, 가정에서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내가 지금 맞추고 있는 이 틀은 누구의 것인가?' 세상은 여러분을 소모품으로 대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분의 거룩한 자녀로 대하십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결단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매 순간 마주하는 작은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한 번 더 묻는 그 정직한 태도로부터 시작됩니다. 변화는 우리 안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지도를 바꾸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세상의 소란함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입니까?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분의 말씀에 여러분의 삶을 맞추어 가십시오. 그것이 바로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요, 하나님께서 이 땅의 성도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변화의 시작입니다.

3대지. 하나님의 뜻을 입증하는 온전한 삶의 열매

바울은 이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인지, 그 목적지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2절 후반부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δοκιμάζω, 도키마조, 시험하여 입증하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이 단어는 단순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적으로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그 뜻이 우리 삶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하여 실제로 선한 열매로 드러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변화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멀리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 마주하는 우리의 구체적인 관계와 책임 속에 녹아 있습니다.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비추는 거울과 같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그것을 삶으로 입증할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거창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의 온전하신(τέλειος, 텔레이오스, 완성된·온전한) 기준을 따라 선택하며 그분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을 입증한다는 것은 때로 세상의 방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용기를 요구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녀의 입시 문제나 직장에서의 경쟁, 혹은 전세와 월세로 대변되는 주거의 불안 속에서 '나만 살면 된다'는 논리를 강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고 입증하기로 작정한 성도는 그곳에서 다른 선택을 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택하고, 남을 짓밟기보다 세워주는 길을 걷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산 제물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그분의 선하신 뜻을 입증하는 하나의 거대한 '증거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매번 분별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합니다. 그러나 분별력은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바울이 말하는 '온전한 뜻'은 우리를 올가미에 빠뜨리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설계도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입증하려 애쓸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그분의 기쁨이 되는지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더하십니다. [5]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뜻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허락받는 것'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과정은 내 고집을 꺾고 그분의 선하심을 내 삶에 덧입히는 과정입니다. 우리 가정의 언어, 직장에서의 태도, 구역과 속회 모임에서의 섬김이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을 입증하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성과가 아니라, 그분의 뜻이 옳음을 신뢰하며 끝까지 그분을 붙드는 우리의 연약한 순종입니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초하여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고, 이 세대의 가치관을 본받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입증하는 성도의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배는 교회 문턱을 넘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갈 때 완성됩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출근길의 지하철, 야근과 회식의 자리, 자녀를 학원으로 보내며 겪는 불안의 시간들이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단이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분께서 먼저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기에, 이제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의 자비에 대한 가장 마땅하고도 감격적인 반응입니다. 이번 주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입증하십시오. 구역과 속회 모임에서 만나는 지체들의 아픔을 듣고 함께 기도하는 그 시간이, 세상의 경쟁 논리를 거부하고 이웃에게 정직과 사랑을 실천하는 그 작은 결단이, 여러분의 삶을 향기로운 제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신의 틀에 맞추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도 주님의 자비하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오니, 우리를 통해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밝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먼저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를 의지하며, 날마다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온전히 정렬하는 겸손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오늘도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온전한 제물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오늘도 세상의 거센 풍랑을 이겨내고 주님의 뜻을 입증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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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본 설교가 근거로 삼은 주석입니다. 본문의 [번호]가 아래 항목을 가리킵니다.

  • [1] 매튜 헨리 주석 / Matthew Henry's Commentary — 로마서 12:1
  • [2] 벵겔의 그노몬 주석 / Bengel's Gnomon — 로마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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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Παρακαλῶ, I exhort) Moses commands: the apostle exhorts. Paul commonly gives exhortations consonant to the doctrines, which had been previously discussed, Ephesians 4 with which comp. ch. 3 So in this passage the general application drawn from the whole discussion is contained in Romans 12:1-2, as the allegations which immediately follow prove. We have shown at Romans 1:16 the special applications from Romans 12:3 up to the conclusion of the epistle.—διὰ τῶν οἰκτιρμῶν, by the mercies) The whole sentiment is derived from Chapters 1–5; the word has its origin in the antithesis to wrath, ch. Romans 1:18 : for the whole economy of grace or mercy, exempting us from wrath, and rousing the Gentiles especially to the discharge of duty, is indicated in this passage, ch. Romans 15:9. He who is rightly affected by the mercy of God, enters into the whole will of God. [But the soul exposed to wrath scarcely derives any benefit from exhortations. You are “pouring oil on a stone.”—V. g.]—παραστῆσαι, that ye present) In so large a list of duties, Paul has none of those things, which in the present day among the followers of the Church of Rome, generally make up both sides of the account. παραστῆ
    Bengel's Gnomon ·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 †1752 · 로마서 12:1
  • [3] 칼빈 주석 / Calvin's Commentary — 로마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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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1. Obsecro itaque vos fratres, per miserationes Dei, ut sistatis corpora vestra hostiam vivam, sanctam, acceptam Deo, rationabilem cultum vestrum. 2. And be not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y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at ye may prove what is that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will of God. 2. Et ne conformetis vos huic mundo, sed transfiguremini renovatione mentis vestrae, ut probetis quae sit voluntas Dei bona et placita et perfecta. After having handled those things necessary for the erection of the kingdom of God, -- that righteousness is to be sought from God alone, that salvation is to come to us alone from his mercy, that all blessings are laid up and daily offered to us in Christ only, -- Paul now passes on, according to the best order, to show how the life is to be formed. If it be, that through the saving knowledge of God and of Christ, the soul is, as it were, regenerated into a celestial life, and that the life is in a manner formed and regulated by holy exhortations and precepts;
    Calvin's Commentary · 장 칼뱅 †1564 · 로마서 12:1–2
  • [4] 헬라어 신약 강해 / Expositor's Greek Testament — 로마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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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mans 12:2. καὶ μὴ συνσχηματίζεσθε: the imperative is better supported ( ) than the infinitive ( ). For the word cf. 1 Peter 1:14. The distinctions that have been drawn between συνσχηματίζεσθε and μεταμορφοῦσθε—on the ground of other distinctions assumed between σχῆμα and μορφή—though supported by distinguished scholars, remind one of the shrewd remark of Jowett, that there is a more dangerous deficiency for the commentator than ignorance of Greek, namely, ignorance of language. In the face of such examples as are quoted by Weiss (Plut., Mor., p. 719 B: τὸ μεμορφωμένον καὶ ἐσχηματισμένον: Eur., Iph. ., 292, μορφῆς σχήματα) and Wetstein (Sext. Emp., ἢ μένει μὲν ἐν τῇ οἰκείᾳ ὑποστάσει, εἰς ἄλλο δὲ εἶδος ἀντʼ ἄλλου μεταλαμβάνον γεννᾶται, ὡς ὁ μετασχηματιζόμενος κηρός, καὶ ἄλλοτε ἄλλην μορφὴν ἀναδεχόμενος) it is impossible not to regard the distinctions in question as very arbitrary. For the best supported and most relevant, reflected in Sanday and Headlam’s paraphrase (“do not adopt the external and fleeting fashion of this world, but be ye transformed in your inmost nature”), see Lightfoot on Php 2:7, or Gifford on the same passage (The Incarnation, pp. 22 ff., 88 ff.). τῷ αἰῶνι τού
    Expositor's Greek Testament · 윌리엄 로버트슨 니콜 †1923 · 로마서 12:2
  • [5] 매튜 풀 주석 / Matthew Poole's Commentary — 로마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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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 not conformed to this world; do not fashion or accommodate yourselves to the corrupt principles, customs, or courses of worldly and wicked men; and what they are, you will find in Romans 13:13 Ephesians 4:18,19 1 Peter 4:3. You have somewhat the like counsel, Exodus 23:2 1 Peter 1:14. Be y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q.d. Be you regenerated, and changed in your whole man; beginning at the mind, by which the Spirit of God worketh upon the inferior faculties of the soul: see Ephesians 4:23. That ye may prove what is that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will of God: by prove, understand discerning: by the will of God, his revealed will in his word; and so it best accords with the reasonable service, spoken of Romans 12:1, and with the scope of the text itself; which is, to exhort unto holiness and obedience, which is according to the rule of the word. He annexeth three adjuncts to the will or word of God: it is good; revealed only for our benefit. It is acceptable; i.e. by obedience thereunto we shall be accepted. It is perfect, and the observance thereof will make us so too, 2 Timothy 3:17. There are different readings of these words, but all to the same sense. S
    Matthew Poole's Commentary · 매튜 풀 †1679 · 로마서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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