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외 신학 자료를 종합해 AI가 재구성한 데이터 주석입니다. 원어는 실제 본문과 대조 검증했으며, 저작권 자료는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핵심 논지만 재구성했습니다. 해석은 다양한 전통을 비교해 제시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주석
개관
갈라디아서 3장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핵심 진리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력하게 변호하고, 율법주의로 돌아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선 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의 진정성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변증했습니다. 3장부터는 본격적으로 논증에 들어가, 율법 준수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이 장은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의 진리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주며, 그들이 받은 성령의 은혜와 율법 행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깨닫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구조
갈라디아서 3장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 대한 책망과 질문 (3:1-5):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율법주의에 현혹된 어리석음을 질책하며, 성령을 믿음으로 받았는지 율법으로 받았는지 묻습니다.
아브라함의 예시를 통한 믿음의 의 증명 (3:6-9):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음을 강조하며,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임을 선언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의 저주와 그리스도의 속량 (3:10-14): 율법을 행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음을 지적하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음을 밝힙니다.
약속은 믿음으로 말미암음을 강조 (3:15-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율법보다 앞서며, 율법이 생긴 후에 약속이 폐기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율법의 역할과 그리스도를 향한 인도 (3:19-25): 율법은 죄를 더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우리를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음을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됨 (3:26-2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선언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임을 강조합니다.핵심 주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Justification by Faith):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율법 준수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의로운 지위임을 강조합니다.
율법과 복음의 대조 (Law vs. Gospel):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역할을 하지만, 복음은 믿음을 통해 은혜와 구원을 선포합니다. 율법주의는 성도들을 다시 종살이로 이끄는 위험한 길임을 경고합니다.
성령의 역할 (Role of the Holy Spirit):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임을 강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을 촉구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Seed of Abraham):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 믿음을 가진 모든 자들이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상속자임을 밝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Freedom in Christ):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와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으며, 이제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려야 함을 선포합니다.단락별 주해
3:1-5 갈라디아 성도들에 대한 책망과 질문
3:1 "오호라 답답한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어찌하여 그리 복음 진리를 순종치 아니하느냐":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어리석음을 '답답하다(foolish)'고 표현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분명히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를 책망합니다. 이는 마치 눈앞에 명백한 진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에 현혹된 상태를 묘사합니다. 헬라어 '바스카이노(βασκαίνω)'는 '악한 눈으로 홀리다', '마법을 걸다'는 의미로, 그들이 거짓 가르침에 의해 영적으로 현혹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죄로 인해 어두워져 진리를 거부하게 됨을 지적합니다.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원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바울은 그들이 성령을 받은 경험을 상기시키며, 성령이 율법 행위로 주어진 것인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써 주어진 것인지를 묻습니다. 이는 성령이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의 결과임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입니다. 웨슬리안/감리교 전통에서는 이 질문이 성령의 내주하심과 역사하심이 율법 준수가 아닌 믿음의 응답에 있음을 강조한다고 봅니다.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 하느냐": 성령으로 시작한 복음의 은혜를 이제는 육체적인 행위, 즉 율법 준수로 완성하려 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질책합니다. 이는 복음의 시작과 완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루터란 전통에서는 인간이 은혜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완성하려는 죄성을 드러낸다고 해석합니다.
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도리어 헛되게 하였느냐": 복음 진리를 위해 겪었던 고난과 핍박이 이제 율법주의로 돌아섬으로써 헛된 것이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청교도 전통에서는 복음 안에서 겪는 고난의 가치를 강조하며, 이를 헛되이 여기는 것은 큰 어리석음이라고 봅니다.
3:5 "너희로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성령을 주시고 능력(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율법 행위 때문인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는 믿음 때문인지를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믿음에 근거함을 분명히 합니다. 침례교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인간의 공로나 율법 준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응답에 있음을 강조합니다.3:6-9 아브라함의 예시를 통한 믿음의 의 증명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 함과 같으니라": 창세기 15:6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구원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복음의 핵심 원리를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헬라어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는 '계산하다', '여기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나타냅니다. 성공회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통해 칭의의 근거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임을 확증한다고 봅니다.
3:7 "그런즉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 즉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참된 영적 후손임을 선언합니다. 이는 혈통적 유대인만이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헬라어 주해에서는 '믿음으로 행하는 자'라는 표현이 단순히 믿는 것을 넘어 믿음에 따른 삶을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3:8 "또 하나님께서 이방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믿지 않는 자들)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것을 성경이 이미 예언했으며,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구원의 계획이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독일 경건주의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보편성과 복음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모든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됨을 의미합니다.3:10-14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의 저주와 그리스도의 속량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율법의 모든 일에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으며, 율법의 모든 규정을 항상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율법의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죄인의 절망적인 상태를 드러냅니다. 헬라어 '카타라(κατάρα)'는 '저주'를 의미합니다.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느니라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으로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하박국 2:4의 말씀을 인용하여 믿음의 의를 강조합니다.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행위를 떠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복을 믿음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시고 그 행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믿음을 통해 모든 복을 받게 하려 하신다고 설명합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신명기 21:23의 말씀을 인용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음을 보여줍니다. 헬라어 '엑사고라조(ἐξαγοράζω)'는 '값을 지불하고 사다', '구속하다'는 의미입니다.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성령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되고, 믿는 우리로 하여금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구원의 범위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확장되었음을 보여줍니다.3:15-18 약속은 믿음으로 말미암음을 강조
3: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그것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언약도 한번 맺으면 변경하거나 더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더욱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강조합니다.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후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씨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후손들'이라는 복수가 아닌, '씨'라는 단수로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약속의 성취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율법이 생기기 430년 전에 주어졌으므로, 율법이 그 약속을 폐기하거나 무효하게 만들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는 약속이 율법보다 우선하며 더 근본적임을 보여줍니다.
3: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니라": 만약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라면 더 이상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구원이 율법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에 근거함을 분명히 합니다.3:19-25 율법의 역할과 그리스도를 향한 인도
3:19 "그런즉 율법이 무엇이냐 범죄를 인하여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의 손을 빌어 중보의 사도에게 주신 바 된 것이니":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죄를 더하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율법은 천사들을 통해 모세에게 주어진 중보의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헬라어 '파라바시스(παράβασις)'는 '넘음', '범죄'를 의미합니다.
3:20 "중보자가 한 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중보자는 한 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강조하며, 율법의 중보자인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단일성을 강조합니다.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율법이 능히 생명을 주는 것이었으면 의인은 반드시 율법에서 났으리라":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만약 율법이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의인이 율법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생명을 주지 못하며, 다만 죄를 깨닫게 할 뿐입니다.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죄 아래 가두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3: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힌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우리를 지켜 지킨 바 되었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있었고,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율법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자각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παιδαγωγός, paidagōgos)' 역할을 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몽학선생은 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노예를 의미하며, 율법이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함을 비유합니다.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온 후에는 더 이상 율법이라는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율법의 안내자 역할이 끝나고, 이제는 믿음으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3:26-29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너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더 이상 혈통이나 율법 준수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신분을 강조합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을 얻게 됨을 상징합니다. 헬라어 '엔두오(ἐνδύω)'는 '옷을 입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을 나타냅니다.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사이에 구별이 없으며 모두 하나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차별이 철폐되고 영적 평등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영적 씨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상속자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아브라함의 언약적 축복을 상속받게 됨을 확증합니다.원어 통찰
βασκαίνω (baskainō): 3절에 사용된 이 단어는 '마법에 걸리다', '악한 눈으로 홀리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거짓 가르침에 의해 영적으로 현혹되어 복음의 진리를 떠나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λογίζομαι (logizomai): 6절에서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로 번역된 이 단어는 '계산하다', '간주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계산하셨다는 것은, 칭의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 주어짐을 보여줍니다.
κατάρα (katara): 10절의 '저주'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율법의 요구를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있음을 나타냅니다.
ἐξαγοράζω (exagorazō): 13절의 '속량하셨으니'로 번역된 이 단어는 '값을 지불하고 사다', '구속하다'는 의미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값주고 사셨음을 강조합니다.
παιδαγωγός (paidagōgos): 24절의 '몽학선생'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를 인도하고 훈육하는 노예를 지칭합니다. 율법이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ἐνδύω (endyuō): 27절의 '옷 입었느니라'로 번역된 이 단어는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성품과 의를 입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신학적 관점 — 전통별 비교
개혁주의 전통: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Sola Fide)를 강조하며,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예정론적 관점에서 구원 과정을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웨슬리안/감리교 전통: 성령의 역사와 내주하심을 강조하며, 믿음의 응답을 통한 구원의 점진적인 체험을 중요시합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성화의 과정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루터란 전통: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강조하며, 율법은 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칭의를 핵심으로 삼습니다.
청교도 전통: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율법의 세 가지 용도(사회적, 시민적, 신학적)를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함께 성화의 삶을 강조하며, 영적 분별력을 중요시합니다.
침례교 전통: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하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개인의 신앙고백과 회심을 통해 이해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교회의 권위를 중요시합니다.
성공회 전통: 성경, 전통, 이성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신학을 이해하려 합니다.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설명하며, 믿음과 행위의 조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헬라어 주해: 원어의 미묘한 뉘앙스와 문법적 구조를 통해 본문의 의미를 깊이 탐구합니다. '몽학선생'과 같은 비유의 의미를 상세히 분석합니다.
독일 경건주의/피에티즘: 개인의 영적 체험과 경건 생활을 강조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율법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냅니다.상호참조
창세기 15:6: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근거 구절.
신명기 21:23: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속량을 설명하는 데 사용됨.
하박국 2:4: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으로, 믿음의 의를 증명하는 핵심 구절.
로마서 3:20, 28: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으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가르침.
로마서 4장: 아브라함의 믿음과 칭의에 대한 상세한 논증.
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는 말씀과 연결됨.
갈라디아서 5장: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성령의 열매를 다룸.설교·적용 포인트
현대판 '마법'에서 깨어나십시오: 오늘날 우리를 복음의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가치관, 물질주의, 성공 지상주의, 혹은 잘못된 영성 등, 우리를 영적으로 현혹시키는 것들에서 벗어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받은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율법 준수가 아니라, 오직 복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은혜로운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의 삶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행동을 실천해야 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율법의 멍에에서 자유하십시오: 율법주의는 우리를 정죄하고 억압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누리며, 율법의 행위가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누리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며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합니다.